조니 안토넬리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 야구 관련 인물(MLB)
파일:external/www.niashf.org/Antonelli-6.jpg
뉴욕 자이언츠 에이스 시절.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20170208090227_yrfwyhao_99_20170208091605.jpg
현재. SK 와이번스 훈련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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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자이언츠 에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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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SK 와이번스 훈련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이름 | 조니 어거스트 안토넬리 (Johnny August Antonelli) |
생년월일 | 1930년 4월 12일 |
사망 | 2020년 2월 28일 (89세) |
국적 | |
출신지 | 뉴욕 주 로체스터 |
포지션 | |
투타 | |
프로입단 | 1948년 보스턴 브레이브스 |
소속팀 |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
1. 개요 [편집]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2시즌을 뛰면서 올스타에 5회 선정된 뉴욕 자이언츠의 대표적이었던 좌완 투수. 1954년 뉴욕 자이언츠 우승의 주역 중 하나이다.
2. 선수 생활 [편집]
1948년 무려 52000달러의 사이닝 보너스를 받고 브레이브스에 입단했다. [1] 금액만 봐도 그야말로 이 투수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한국전쟁 발발로 한국에 파병되어 2년간 군복무를 했으며, 복무를 마치고 나서 전성기를 맞게 된다.
1954년 뉴욕 자이언츠와 계약하여 무려 21승 7패 2.30이라는 호성적을 기록했으며 팀의 우승에도 기여했다. 월드시리즈 2차전에는 선발로 등판했고, 팀이 전적 3승으로 앞서고 있던 4차전에는 불펜으로 등판해 호투를 펼쳤다. 덕분에 뉴욕 자이언츠는 4연승으로 스윕 우승.
이후에도 승승장구하며 1956년부터 1959년 4년 연속 올스타전에 출장하는 등 자이언츠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61년 클리블랜드와 밀워키를 오가며 평균자책점 6.75의 최악의 부진을 겪자 미련 없이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당시 나이 31세로 다소 이른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본인은 훗날 저니맨 생활이 피곤했던 것이 은퇴 원인이었다고 회고했다. 통산 성적은 126승 110패 평균자책점 3.34.
고향 로체스터로 돌아와 파이어스톤 타이어의 체인점을 수년간 운영했고, 지금은 완전히 은퇴한 듯.
2020년 2월 28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1954년 뉴욕 자이언츠와 계약하여 무려 21승 7패 2.30이라는 호성적을 기록했으며 팀의 우승에도 기여했다. 월드시리즈 2차전에는 선발로 등판했고, 팀이 전적 3승으로 앞서고 있던 4차전에는 불펜으로 등판해 호투를 펼쳤다. 덕분에 뉴욕 자이언츠는 4연승으로 스윕 우승.
이후에도 승승장구하며 1956년부터 1959년 4년 연속 올스타전에 출장하는 등 자이언츠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61년 클리블랜드와 밀워키를 오가며 평균자책점 6.75의 최악의 부진을 겪자 미련 없이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당시 나이 31세로 다소 이른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본인은 훗날 저니맨 생활이 피곤했던 것이 은퇴 원인이었다고 회고했다. 통산 성적은 126승 110패 평균자책점 3.34.
고향 로체스터로 돌아와 파이어스톤 타이어의 체인점을 수년간 운영했고, 지금은 완전히 은퇴한 듯.
2020년 2월 28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3. 여담 [편집]
[1] 이 금액은 당시 역대 최고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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